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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철도 비밀노트–11화] 서울-평양에서 베이징까지-남북 응원열차를 향한 경의선의 꿈

양정규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8/03 [09:00]

[북한철도 비밀노트–11화] 서울-평양에서 베이징까지-남북 응원열차를 향한 경의선의 꿈

양정규 객원기자 | 입력 : 2021/08/03 [09:00]

(기획특집 시리즈 남북철도 봄은 오는가) = 반세기 이상 단절되어 온 남북철도를 복원하기 위해 애써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측 인사들과 만나 실무협의를 하고 실제로 진행을 맡았던 실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비화를 모아 전해드립니다. 남측과 북측이 나눴던 팽팽한 긴장감과 때론 따뜻하고도 찡했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남북철도 복원의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요! =

 

[국토매일=양정규 객원기자/작가] 요즘 2021년 도쿄 올림픽이 한창이다. 코로나 시국에 열리는 사상 초유의 올림픽이라 그 열기가 덜하지만, 예로부터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였다. 

 

정치적인 문제로 긴장관계에 있던 나라들도 스포츠 경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우의를 다지곤 했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다.

 

2002년에는 세계인의 축구 축제인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렸는데 대한민국 사상 첫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얻어냈다.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온 나라를 붉게 물들인 붉은 악마 티셔츠와 함성 소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서울시청과 광화문, 고수부지 등을 가득 채우고 응원하는 국민들과 붉은 악마의 모습은 외신들에게도 엄청난 놀라움으로 전해졌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6년에는 독일에서 월드컵이 열렸는데, 우리는 2002년의 영광과 감동을 독일에서도 이어가길 원하는 마음으로 독일월드컵 한국응원단 수송을 위한 '대륙을 달리는 평화열차'를 계획했다. 

 

민족통일 염원을 담은 대륙횡단열차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2006년독일월드컵'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계획인데 부산(목포)를 출발하여 북한 평양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경유하여 베를린까지 한국축구응원단을 철도로 수송하기로 한 것이다. 

 

‘대륙횡단 평화열차’로 이름 붙여진 이 계획은 남북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을 연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2002년 월드컵에서의 영광과 감동을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도 이어가고 승리를 기원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남과 북은 한국응원단 수송을 위한 “대륙을 달리는 평화열차”를 계획했었다. 사진은 2007년 화물열차 개통 당시 한반도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인파들.  © 국토매일

 

‘대륙횡단 평화열차’에는 각계 각층 인사들로 구성된 350명 규모의 응원단을 구성하여 17박 18일 일정으로 2006년 6월 3일 부산과 목포에서 각각 KTX로 출발, 서울에서 하나로 합쳐져 북한 평양에서 통일화합대잔치를 펼치고 나진, 두만강을 경유하여 TSR과 연결, 러시아의 모스크바, 폴란드의 바르샤바, 체코의 프라하를 경유하여 월드컵 개막 하루 전인 6월 18일 독일 라이프찌히에 도착하여 프랑스전에 응원하는 대장정이었다. 

 

과거 고 손기정옹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경성역(서울역)에서 중국 하얼빈을 거쳐 독일 베를린까지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17일간의 여정을 거쳐 간 적이 있다.

 

평화열차가 성공리에 독일까지 가게 된다면 아직 연결되지 못한 남북종단철도 연결을 염원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었다. 

 

나아가 한국 미래의 경제적 발전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인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알리는 중요한 시험대이기도 했다. 

 

▲ 한국코카콜라 등 월드컵 응원열차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주체가 서너 곳에 이르렀지만 참여할 수 있는 소비자가 거의 없고 조류독감 등 뜻하지 않은 사고 우려 등으로 무산됐다.  © 국토매일

 

하지만 월드컵 조별 예선이 끝난 6월 18일까지도 출발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평화열차 일정이 15일 안팎인 것을 염두에 둔다면 사실상 무산된 셈이었다. 

 

월드컵 응원열차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주체만도 서너 곳에 이르렀다. 

 

특히 한국코카콜라는 ‘999 붉은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원대한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었지만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요 소비층인 직장인과 학생인 까닭에 긴 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소비자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유행했던 조류독감과 뜻하지 않은 사고의 우려, 북한의 유동적 정치 상황 등도 무산된 배경으로 추측되기도 했다. 

 

계획이 무산될 분위기는 이미 2006년 2월부터 있어왔다. 

 

당시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2월 초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일단 서울에서 개성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간 뒤 개성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다음 시베리아횡단열차를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며 열차로 북한을 통과하는 방법이 쉽지 않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또 다시 말을 바꿔 북한 통과를 배제하고 비행기로 러시아까지 간 뒤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수정했다. 

 

경로에서 북한이 아예 빠진 것이다. 이 계획조차 백지화 되었지만 말이다. 

 

▲ 사실 베이징올림픽 남북응원단 응원열차 계획은 남북러 3자 회담 당시에도 논의가 됐던 부분이지만 그 전부터 이미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열차로 북한을 통과하는 방법이 쉽지 않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 국토매일

 

월드컵 응원열차 계획이 처음부터 비예산 사업으로 진행된 까닭에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외부 스폰서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충당해야했는데 ‘북한 통과’라는 큰 이벤트가 사라지자 하나 둘 발을 빼 흐지부지 된 것이다. 

 

남한의 이러한 사정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북한이 북한 통과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이재붕 전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원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사실 이거 한다고 밥과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기차로 대륙까지 가려면 개성이랑 평양까지 지나가야 하는데 그걸 북한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거라고 봐요. 남북간 실무접촉을 해보면 철도시설의 차이가 확연한데, 우리 철도가 북한으로 넘어갔을 때 북한의 시설이 이걸 견딜 수 있겠느냐 하는 거죠. 우리 레일은 하중을 견딜 수 있게 설치돼 견고하지만 북한은 수십년간 유지보수가 잘 되지 않아 그쪽의 교량이나 철도가 견뎌낼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또한 주변 풍경이 다 보여주기 싫은 광경이었을 거예요. 여러 가지 이유를 따져봤을 때 북한으로서는 이런 이벤트를 할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합니다. ” 

 

▲ 북한이 북한 통과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륙까지 가려면 개성과 평양을 모두 지나가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 국토매일

 

그럼에도 우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는 반드시 남북 응원열차를 운행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2007년 화물열차 정기운행 직후 남북철도 개보수를 위한 공동조사단이 남북철도가 북한을 지나 대륙으로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2007년 12월 10일~18일까지 우리 열차를 끌고 신의주까지 다녀온 적도 있다. 이때  남북간에 합의된 내용은 ‘2008년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 때 남북응원단을 결성하여 남북열차로 서울-평양-베이징 까지 가자.’ 였다. 

 

사실 우리 남한은 분단이후 대륙으로 가본 적이 없었다. 

 

북한은 중국과 철로가 연결돼 있어 대륙으로의 이동이 자유로웠지만 남한은 북한에 가로막혀 섬 아닌 섬나라로서 제한된 운행만 해 왔던 터였다. 

 

선박이나 항공기를 통한 작업은 익숙했으나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는 일은 생소하기까지 했다. 

 

국제철도운행 준비를 위해 통일부에선 먼저 각 분야의 전문가 15명 정도를 데리고 북으로 갔다. 

 

그런데 북측에선 겨우 중년 정도로 되어 보이는 전문가 한 명만이 우리를 맞이했다. 

 

북측의 국제철도 전문가로 소개된 그는 신의주, 만포, 두만강 등 거의 모든 노선을 총괄해본 사람이라 했고 그 덕분에 우리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북측 위원들은 정보부 사람이 동석해 있으면 말과 행동을 무척 조심했다. 

 

하지만 사석에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남한식 아재개그 같은 농담도 곧잘 했다. 

 

교량, 터널, 궤도, 신호체계 등의 전문가들이 함께 가서 객차를 개조한 침대차에서 먹고 자며 조사한 결과 레일과 침목, 자갈만 보완하면 100km/h 수준 열차 운행은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남북간 긴밀한 협조만 이루어진다면 금방이라도 열차를 운행 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느꼈다. 

 

▲ 분단 이후 남한은 열차로 대륙을 가 본 적이 없었지만 북한은 국제철도 관련해서 경험이 풍부했고 철도시설을 조금만 보완하면 열차 운행은 크게 문제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 국토매일

 

하지만 전력을 이용하는 남북 철도 운행 방식과 달리, 중국 철도는 디젤을 사용하므로 기술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와 관련해 코레일측은 “중국 철도부 왕즈궈 부부장 방한 때 부산에서 베이징까지 2048㎞의 전 노선을 철도로 운행하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으며, 운행에는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속도와 이동 시간 또한 문제였다. 경의선은 철로가 낡아 고속운행을 할 수가 없었는데 만약 시속 60㎞로 열차를 운행하면, 부산~평양 12시간, 평양~베이징 22시간 등 모두 34시간이 걸리는 점이 제약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코레일에서는 숙식이 가능한 최고급 호텔식 명품관광열차인 ‘해랑’을 응원열차로 투입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거리 여행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해랑은 한국전통 문양으로 특별제작 되어 베이징올림픽 응원열차로 사용된 후에는 국내 여행객을 위한 관광열차로도 활용할 예정이었다. 

 

▲ 한국철도공사 산하 코레일관광개발에서 2008년부터 운영하는 관광용 침대열차 해랑. 당초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 2008년에 만들어진 열차로 초호화 여행 전용열차로 바뀌었다.  © 국토매일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을 한 달여 앞둔 2008년 7월, 예기치 못한 안타까운 사건이 터지고 만다. 

 

새벽 5시경 금강산 관광객 한 명이 장전항 북측구역내 기생바위와 해수욕장 중간 지점에서 북측 초병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망자 박모씨는 53세 여자로, 숙소인 비치호텔에서 나간 후 해수욕장 주변을 산책하던 중에 이러한 변을 당했다.

 

북측이 금강산관광 사업자인 현대아산에 통보해온 내용에 따르면 박모씨가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북측군 경계 지역에 진입하였고, 초병의 정지요구에 불응하고 도주하여 발포하였다고 밝혔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남과 북의 교류는 일제히 중단되는 계기가 됐다.  

 

▲ 베이징 올림픽을 한 달여 앞둔 2008년 7월, 예기치 못한 안타까운 사건으로 인해 북측과의 모든 교류가 일제히 중단되고 만다.  © 국토매일

 

결국 베이징 올림픽 남북응원단 추진 계획 역시 취소되었다. 

 

여러 차례 회담을 하며 불길한 예감이 스치긴 했지만 설마 이번에도 깨질까 싶었다. 일말의 기대를 걸었지만 또 무산되고 말았다. 

 

더 이상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북측 실무자들도 무척 실망한 듯 보였다. 서로 너무 실망하지 말라 다독였고 북측에서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남북철도의 진행은 철도만의 문제로 풀리지가 않았다. 남북의 정치적 요인들에 따라 시시각각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했다. 

 

주변국의 정치적인 영향에 따라 움직여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미국의 통제는 조그마한 사항까지도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됐다. 

 

남북 당사자간 합의만으로 추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사업 추진이 훨씬 순조로웠을 것이다. 

 

2018년 김정은과 트럼프의 베트남 회담 당시 김정은 특별열차가 북한에서 중국을 경유하여 베트남 동당역까지 운행한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당사자간 합의만 잘 이루어진다면 남북간 열차 운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만약 북한의 비핵화 합의와 투명한 실천이 선결된다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제재도 풀릴 수 있다. 

 

경제적 제재가 풀린다면 남북철도 사업도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다. 왜냐하면 철로를 만들 주된 재로인 철강류가 대북제재 품목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손을 뻗어선 안된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 그리고 적당한 때를 잘 살피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남북철도 복원사업은 그렇게 주변 강대국들의 방향과 세기, 그리고 적당한 때를 찾지 못한 채 그렇게 중단되고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  

 

▲ 남북철도는 철도만의 문제로는 풀리지가 않았다. 남북 정치적 요인 뿐 아니라 주변국의 정치적 영향에 따라 움직이며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남북통신선이 복원된 것을 계기로 다시 남북이 머리를 맞대기를 기대해 본다.  © 국토매일

 

남북철도운행의 전제 조건은 남북간 근본적 교류에 대한 합의가 먼저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진행을 하다보니 실무자들의 바람과 계획과는 다르게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잦았다. 첫 발을 떼는 건 항상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남북이 서로 함께 응원단을 태운 열차를 대륙으로 보내자며 머리를 맞댄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2018년 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12월 남북철도 현지 공동조사단이 다시 북한철도를 조사했고 북한이 동의하지 않아 가입하지 못했던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도 만장일치로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우리는 정식 회원국으로 서울에서 출발하는 국제철도 운행 추진도 가능해 졌다.

 

이런 가운데 ‘희망레일’ 등 시민단체들은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서울-평양-베이징을 잇는 응원 열차 운행을 추진하고 있다. 올림픽 응원 열차 운행을 통해 남북 교류의 물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 유라시아 횡단철도 노선도.  © 국토매일

 

동북아 1500킬로미터 반경에는 인구 천만 명이 넘는 도시가 10여 개나 있다. 이 지역을 왕래할 수 있는 철도가 연결된다면 엄청난 경제활동이 생길 것이다. 

 

최근 남북통신선이 복원되었다고 한다. 계속 어긋나기만 하던 남북이 다시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우리 남북열차가 중국이나 러시아, 유럽까지 가자는 원대한 꿈은 멈추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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