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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특집 기고] 중대재해처벌법이 건설업 중대재해 저감에 기여할 수 있을까?

정재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재욱 교수 | 기사입력 2022/03/28 [16:32]

[안전특집 기고] 중대재해처벌법이 건설업 중대재해 저감에 기여할 수 있을까?

정재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재욱 교수 | 입력 : 2022/03/28 [16:32]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재욱 교수.  © 국토매일

[국토매일=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재욱 교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건설업에서도 이미 몇 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고,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처벌여부와 수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자체 또는 세부 조항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일부 순수과학이 아닌 이상 어떠한 시스템이나 기술 또는 제도일지라도 정답은 있을 수 없고 항상 순기능과 역기능 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관련해 건설안전분야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을 꼽자면 무엇보다 ‘안전’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많은 기업들이 이전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기관 및 기업들이 안전전담 조직을 신설하거나 확충하고 있으며 경력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안전 전문인력 채용에 매우 적극적인 상황이다.

 

다수의 대형 건설사에서 토목, 건축, 플랜트 등의 각 사업본부장을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 선임하고 기존 안전보건전담 팀 또는 본부에 일임하던 현장의 안전수준 향상 활동을 각 사업본부에서 직접 주도하는 형태로 안전업무의 전체적인 비중을 높이고 있다.

 

모 대형 건설사의 경우, 현장 안전관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Design for Safety(설계단계에서부터 잠재적 위험요인을 최소화하는 안전관리기법)를 전사적 키워드로 적용하고 있기도 하다.

 

사고 예방이라는 순수한 의도보다는 경영책임자 처벌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목적이 강하다고 볼 수밖에 없지만 건설업계에서 오랜 기간 비주류 업무로 인식돼오던 건설안전 분야의 중요성을 기업들이 중요하게 인식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과정에서 우려되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고 발생시 건설업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상황에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의무 위반이 해당 사고의 주된 원인임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향후 적용사례를 살펴보아야겠지만 제조업 중심의 산업안전 관점에서 수립된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이행 여부를 건설업 사고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건설공사는 개별 프로젝트별로 기획ㆍ설계ㆍ입찰ㆍ시공ㆍ유지관리ㆍ리모델링ㆍ해체에 이르는 생애주기를 고려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며, 용도별 공사목적물에 따라 설계 및 시공기술과 관리방법 또한 다양하다.

 

더불어 생산과정에서도 다양한 업역을 가진 다수의 참여자가 일시적이고 복합적으로 참여하고 협업하는 복합적 생산체계를 갖고 있다.

 

이는 고정된 사업장과 설비의 운영과정에서 사업주와 근로자 간의 안전ㆍ보건관리를 전제로 하는 전통적인 산업안전의 관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건설산업의 구조적 차이다.

 

즉, 건설업에서 사고의 주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첫째, 공사 및 작업 유형별 특성을 파악해야 하며, 둘째,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와 근로자 뿐만 아니라, 발주자, 설계자, 감리자, 시공자, 전문업체 및 근로자의 책임이행여부를 살펴야 하며, 셋째, 시공단계뿐만 아니라 기획, 설계, 입찰 단계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산업안전 관점에서의 제도 강화가 제조업과 달리 건설업에는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그림과 같이 지난 10년간 제조업과 건설업의 사고사망만인율 변화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난 10여 년간 제조업의 사고사망만인율은 절반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였지만, 건설업은 제자리 수준이거나 되려 상승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건설업의 재해 저감을 위한 국내외의 최신 활동을 큰 틀에서 나누면 아래와 같다.

 

첫째, 영국의 CDM (Construction Design & Construction)과 같이 건설업에 적용되는 안전관리제도를 별도로 수립하거나 둘째, 스마트 또는 모듈러 기술 등을 활용해 현장 노무를 줄이고 공장 선제작을 늘리는 방식으로 현장의 위험작업을 근본적으로 최소화하는 OSC (Off-Site Construction) 개념으로 생산체계를 바꿔 가거나, 셋째, 필수적인 현장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재래식 노무 대신 장비 또는 로봇을 활용하도록 작업방식을 개선하거나,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작업자들의 불안전한 행동 등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중대재해처벌법 및 시행령에서 요구하고 있는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의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건설업 사고 저감을 위한 활동들과는 거리가 멀다.

 

즉, 건설업의 경우 법에서 요구하는 의무 수준을 맞추더라도 사고는 이전과 비슷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수행 주체 입장에서는 법에서 요구하는 안전활동에 투자하기보다는 사고 발생 시 면책 또는 처벌 최소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법적 대리인에게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처벌사례와 근거를 살펴보아야겠지만, 건설업에 있어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과정에서 우려되는 지점이 바로 이점이다.

 

건설업에서 중대재해 발생시 그 주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경영책임자가 안전확보를 위한 충분한 투자와 활동을 했는지, 건설업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사하고 그에 따라 처벌 또는 면책이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한 의무에 대한 준수 여부나 해당 사고 원인과 무관한 다양한 산업안전보건기준 위반사례를 먼지떨이 식으로 나열한다면, 건설업의 특성상 경영책임자의 의무와 사고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의 안전투자 확대라는 근본 취지를 잃고, 법무법인의 수익 창출에 기여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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