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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노태우와 건설산업

전병수 본지 논설위원

전병수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1/11/05 [11:49]

[칼럼]노태우와 건설산업

전병수 본지 논설위원

전병수 논설위원 | 입력 : 2021/11/05 [11:49]

▲ 전병수 논설위원     ©국토매일

[국토매일=전병수 논설위원]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으로 재임기간은 1988년 2월에서 1993년 2월까지 5년이다. 그는 12·12 쿠데타 등의 주역으로 이 나라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지탄을 받아왔다. 동시에 북방외교, 남북관계 완화, 인프라 확장, 주택공급 등의 부분에서는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과와 공이 선명한 복합적인 인물이다. 

 

그의 죽음은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기자 개인의 경우 민주화 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1987년 6월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호헌철폐’를 부르짖으며 퇴근 후 시위대의 일원이 되어 시내를 행진했다. 소위 넥타이 부대로 불리며 진압경찰들에게 쫓겨 남대문시장 골목, 소공동 빌딩 계단 등으로 피신했던 일들이…. 젊은 날의 짧은 기억 속에는 격동의 시대를 산 아픈 역사들이 가슴속 깊이 묻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분에서 이뤄지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다. 굳이 기자까지 가세해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는 않다. 보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세상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그가 건설 산업과는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꼭 짚어보고 싶었다.

 

노태우 정부의 건설관련 사업은 초대형 프로젝트들이 많다. 주택 200만호 공급, 인천공항, KTX 사업 등이 손에 꼽힌다. 이들 사업은 20세기말을 관통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대한민국 현대건설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단순하게 구조물을 짓는다는 의미를 벗어나 건설업은 물론 건설연관 산업, 건설기술, 국민의 삶 등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우선 서민들의 가슴을 뻥 뚫어 준 것이 주택 200만호 건설이다. 성남 분당, 고양 일산, 안양 평촌, 부천 중동, 군포 산본 등 서울 주변에 신도시를 건설해 주택 29만2000호를 공급했다. 소위 1기 신도시다. 동시에 재임 기간 중 총 200만호에 이르는 주택을 공급하며 주택문제 해결을 진두지휘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주택공급으로 손꼽는다.

 

인천공항 건설과 KTX 사업은 교통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역대급 사업으로 평가된다. 서해바다 영종도의 갯벌을 메워 만든 인천공항은 이미 세계 톱클래스의 공항으로 자리 잡았다. KTX 프로젝트 역시 대한민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바꾼 교통혁명이었다. 서울에서 부산-광주 등 2~3시간대 고속화 시대를 만들었고 그 덕에 하루면 일을 보는데 충분한 세상이 됐다.

 

노태우 정부의 이런 건설정책들이 실행에 옮겨지면서 건설업과 연관 산업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시장이 급격히 확대됨에 따라 업계 판도가 달라지고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는 등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쳤다. 

 

1기 신도시 건설사업은 지방의 건설사들이 수도권으로 진출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건설사 이름을 딴 아파트가 수도권 곳곳에 지어지면서 지명도가 높아지고, 이를 발판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됐다. 이들 지방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는 일산이나 분당 등에 가보면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문을 닫은 업체들이 나오기도 했다.

 

철근, 시멘트, 레미콘, 모래 등 건설자재 시장도 출렁거렸다. 짧은 기간에 집중된 대형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공급부족 사태를 야기했다. 품질이 낮은 중국산 시멘트가 마구잡이식으로 들어오고, 멀리 터키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철근이 수입되기도 했다. 레미콘은 시멘트가 없어서 만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후 설비 증설이 진행되면서 시멘트와 철근은 연간 생산능력 1000만t을 웃돌게 됐다.

 

건설기술 발전의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들이 나왔다. 신도시 건설로 쌓은 노하우는 외국으로 수출됐다. 특히 인천공항을 연결해주는 영종대교는 우리나라 교량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든 다리이다. 세계 최초의 자정식 3차원 케이블 현수교인고 도로와 철도를 병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사업이기도 하다. 영종대교를 건설한 기술력은 훗날 서해대교와 인천대교를 건설하는 바탕이 된다.

 

노태우 정부의 이런 건설정책과 성과들은 ‘건설이 복지’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집이 없는 곳에 집을 지어주고 길이 없는 곳에 하늘 길과 기찻길을 열어줘 국민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이다. 동시에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건설기술 수준을 높여 오늘날의 건설강국을 이루는데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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