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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철도 비밀노트–15화] 시속 300km KTX는 북측 경제사절단도 박수치게 해

양정규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9/28 [08:30]

[북한철도 비밀노트–15화] 시속 300km KTX는 북측 경제사절단도 박수치게 해

양정규 객원기자 | 입력 : 2021/09/28 [08:30]

(기획특집 시리즈 남북철도 봄은 오는가) = 반세기 이상 단절되어 온 남북철도를 복원하기 위해 애써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측 인사들과 만나 실무협의를 하고 실제로 진행을 맡았던 실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비화를 모아 전해드립니다. 남측과 북측이 나눴던 팽팽한 긴장감과 때론 따뜻하고도 찡했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남북철도 복원의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요! =

 

[국토매일=양정규 객원기자/작가] 분단 이전의 서울역은 국제역이자 동북아의 허브였다. 국내선과 국제선을 타는 곳이 따로 있었고 당시 청년이었던 손기정선수도 경부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서 베를린 올림픽에 참석했다.

 

2018년엔 유독 남과 북에 활기찬 기운이 감돌았고 함께 뭔가 해보자는 분위기가 강했다. 국내외 정세가 두루두루 순풍에 돛을 단 형국이었다.

 

2018년 2월 9일부터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당시, 북측의 김여정과 김영남이 서울에서 평창까지 이동하면서 KTX에 직접 탑승해 특사 일정을 치른 적이 있는데 이후 김정은이 우리 철도 기술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어떤 기술이 도입·적용됐는지 공사비는 어느 정도인지 꼼꼼히 챙겨보라고 지시했다는 일화도 있다.

 

북측은 이전부터 우리의 철도에 관심이 각별했다.

 

2002년 북한 경제시찰단이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 경제의 사령탑 격인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 등은 경부선 KTX가 시속 300km까지 속력을 내자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어 4월 27일 판문점선언에서 동해선의 현대화가 언급되었는가 하면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서해와 동해선 철도와 도로 착공식 합의를 도출해내기도 했다.

 

▲ 백두산 정상에서 손을 맞잡은 김정은과 문재인(출처=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공동취재단).  © 국토매일

 

백두산 정상에서 손을 맞잡은 두 정상이 백산수 물을 뜨는 장면이 그 정점이었다. 세계 언론이 집중됐다. 남과 북이 함께 손뼉을 치며 노래도 했다.

 

2018년 한 해는 남과 북이 드디어 뭔가를 이뤄내겠구나, 라는 기대감에 모두 들뜬 분위기였다. 

 

남북철도 사업 또한 그 흐름을 타고 활발히 진행됐다.

 

강릉-제진간 끊어진 구간에 대한 예산도 배정됐다. 토지매입부터 차근차근 진행될 예정이었다. 연결사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실제적인 업무가 중단된 때라 하더라도 남북경협이 이뤄지면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도록 국토부와 통일부가 함께 협력해 진행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2018년 7월에 북방경제협력사업팀이 나진하산 프로젝트 건으로 당시 송영길 위원장과 자문위원들이 함께 나진항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회의 분위기도 아주 좋았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나인브릿지 정책으로 정부에서도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남북고위급 장관회담이나 남북철도협력분과 회담 등을 개최하자는 이야기도 오고갔다. 하지만 북측에선 ‘맨날 회담만 하다 말거냐, 공동조사단을 만들어 북측과 남측이 현실적인 행동을 해보자’라며 재촉하는 분위기였다.

 

남과 북이 같이 꿈꾸는 남북철도 대륙화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측의 실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현지공동조사를 위해서는 우리 철도를 가지고 북에 갈 수 있을 것인지 또 안전성에 대한 검증은 되어 있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급선무였고 그 조사를 위해 우선 DMZ 남쪽에 대한 철로 보수 작업부터 완료했다. 

 

일의 빠른 진척을 위해 우리측 담당자가 ‘우리도 했으니 너희도 해라,’ 라는 뉘앙스로 북측 담당자에게 말 한 적이 있는데 돌아온 대답은 ‘일 없다’ 였다.

 

그 말의 뜻을 오해해 상관하지 마라, 괜찮다, 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문제 없다, 란 뜻이었다. 돌아올 때 보니 벌써 보수작업을 모두 끝내놓은 것을 보고 북측의 실행력에 다시 한번 놀란 기억이 있다.

 

▲ 남북공동현지조사를 위해 떠나기 위해 서울역에 정차해 있는 우리 열차. 장장 18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현지공동조사는 북측 열차노선을 종횡으로 누비며 진행됐는데 조사구간만 1,200km, 총 이동거리만 해도 2,600km에 달했다.  © 국토매일

 

이러한 남북 실무자들의 빠른 실행력과 열정과는 별개로, 현지공동조사를 실행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사실 우리 기관차 화차 기름 경유 등을 북으로 가져가는 건 유엔 제재 대상이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미국의 지지도 받아내고 유엔 대북 제재 승인도 받아내어 공동조사 착수하게 된다.

 

2018년 11월 30일 남북철도현지공동조사단이 북녘땅을 향해 가던 날 우리는 과거 국제역이었던 서울역의 위상이 되살아 날 그날이 속히 올 것으로 믿었다.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았던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7개월 만에 내딛은 첫 발이었다.

 

장장 18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현지공동조사는 북측 열차노선을 종횡으로 누비며 진행됐는데 조사구간만 1,200km, 총 이동거리만 해도 2,600km에 달했다.

 

남북철도 현지 공동조사는 2018년 체결된 4·27 판문점선언때 남북공동번영을 이야기하면서 나온 화두였다. 남북 철도 연결과 도로 현대화를 위한 공동 점검이 7개월 뒤 실제로 실시된 것이다.

 

원래 8월에 실시하려고 했지만 유엔이 제동을 걸어 미뤄졌다. 48시간 전에 미리 통보해야 한다며 유엔에서 불허 통보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뒤  9·19 평양공동선언의 성과에 따른 후속조치로, 한미워킹그룹을 통한 미국의 지지와 유엔의 대북제재 면제 승인을 받아 시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북측 판문역에 도착한 우리 기관차는 발전차, 침대차, 객차 등 북측 열차 4량과 연결됐다.

 

2008년 11월 28일까지 운행됐던 경의선이 다시 10년 만에 운행이 재개된 순간, 한반도의 교통망이 중국과 러시아를 넘어 유럽 대륙으로 뻗어 나갈 꿈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았다.

 

남북 공동번영의 신호탄이자 섬처럼 갇혀있던 경제영토를 확장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큰 사건이었다. 

 

당시 조사는 2007년 진행됐던 남북철도현지공동조사 때 보다 더 큰 규모로 진행 되었는데 경의선의 개성~신의주 400km를 6일 동안, 동해선의 금강산을 거쳐 두만강까지 800km를 10일 동안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특히 동해선의 금강산에서 두만강 구간으로 남측 열차가 운행된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조사에 투입된 열차는 경의선을 따라 압록강과 두만강, 한반도 최북단까지 답사를 함으로써 분단 후 처음 동해선을 달린 남측 열차로 기록되기도 했다.

 

우리측 열차는 기관차 1량과 침대차, 회의실, 유조차, 발전차 등 6개의 열차로 구성되어 있었다.

 

약 18일간 직접 열차 운행하며 조사 진행하며 열차 안에서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물병 수백통, 세탁기, 건조기, 밥통 등 온갖 가전제품도 다 들어가 있었다.

 

▲ 북측의 객차와 남측의 유조차가 연결된 모습.  © 국토매일

 

이 중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발전 차량에 5만 5천리터급 유조차와 3백kw급 발전차인데, 북한으로 유류를 제공하는 것이 유엔 대북제재 문제가 있었다.

 

대북제재가 있기 때문에 통일부도 그렇고 실제 연결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조사가 지연되는 것을 두고 이것도 자주적으로 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남북철도현지공동조사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포함한 28명의 남측 조사단은 북측 30명의 조사단과 북측 판문역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며 유라시아 대륙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일상을 앞당기자 다짐했다.

 

남북조사단은 수시로 열차를 오르내리며 특히 터널과 교량의 안정성과 현대화 가능성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조사환경이 열악하고 시간도 촉박했지만 자주 오지 않을 기회인 것을 알기에 더욱 면밀하고 꼼꼼하게 조사에 임했다.

 

자기 분야를 하나라도 더 보려고 굉장히 긴장하면서 일에 임했던 것 같다. 북측의 조사단 사람들도 이 사업에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었다.

 

해가 떨어지면 각 조사단 분야별로 저녁에 그날 그날에 대한 토의를 하고 정리하느라 바빴다.

 

11월 30일에 개성으로 넘어간 경의선 조사팀은 12월 5일까지 6일간 경의선을 조사했고 일부 조사원은 남측으로 내려가고 열차는 동해선 축으로 이동해서 12월 8일 부터 12월 17일 까지 10일간 동해선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경의선에서의 6일과 동해선에서의 10일을 합해 총 16일간 이뤄진 조사였다. 모든 조사를 마치고 12월 18일 판문역에 도착해 우리 차량을 끌고 내려오는 것으로 공동조사가 마무리됐다.

 

조사 결과 2008년과 거의 대동소이했다.

 

더 좋아졌다고 평가하긴 곤란하지만 북측은 그 철로를 그대로 실제 운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철로가 육로보다는 더욱 효율적인 교통수단임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었다.

 

▲ 공동조사에 사용됐던 북측의 기관차.  © 국토매일

 

개성-평양은 30km 이하, 평양-신의주는 60~70km의 속도를 냈다. 현재 우리 남측의 열차는 300km 속도가 가능해 일일 생활권이 된 지 오래인데 말이다.

 

북측이 우리처럼 그 정도 속도로 달리기 위해서는 지정학적 연구가 좀 더 필요해 보였다.

 

북측 사람들은 항상 배울 자세가 되어 있다. 특히 철도성 사람들은 기술적인 면과 영업적인 면에서 우리로부터 열정적으로 배우려 했다.

 

신의주를 대륙과 연결하기 위해 대륙간 화물하치장 부지도 우리에게 보여주는 등 매우 적극적이었다.

 

물론 우리측 조사단은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채 그들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술적인 교류를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식사는 북의 열차 내 식당칸을 이용했는데 우리 돈을 지불하고 북측에서 준비해준 식사였지만 무척 다양한 요리를 맛보게 해주어 매번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대접받은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전날 만찬에 나온 가물치회인데 가물치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가물치가 움직이지 않으면 찬물이나 식초를 뿌려 더 생생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무척 색다른 경험이었고 그들이 우리에게 더 좋은 걸 주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느껴져 고마웠다. 옥류관의 평양냉면도 맛보았는데 면이 끊기고 굵어서 마치 우리의 막국수를 먹는 기분이었다. 
 
북측 사람들은 자존심이 무척 셌다. 그럼에도 철도 현대화를 위해 자신들의 허물을 기꺼이 우리에게 보여주며 부끄러워하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보았다.

 

만약 남북경협이 이뤄지면 우리는 같은 말을 쓰니까 훨씬 사업이 쉽고 더 적극적으로 이뤄지겠구나 하는 확신도 생겼다. 

 

▲ 조사기간 중 동해선 쪽에 폭설과 추위 때문에 우리 발전차의 노즐이 얼었을 때 북측 사람들이 도와주어 함께 열차를 녹인 일도 있었다.  © 국토매일

 

여러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동해선 조사 당시 겪었던 일이다. 동해선쪽에 폭설이 내려 발목이 잠길 정도였는데 그때 추위가 너무 심해 우리 발전차의 노즐이 얼어버린 일이 있었다.

 

발전차가 얼면 난방도 조명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문제가 컸다.

 

그때 북측이 도와주어 함께 토치로 녹이고 장작에 불을 떼가며 열차를 녹이고 열차에 싣고 있던 식수까지 녹이느라 애를 썼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일로 북측 사람들과 무척 돈독해졌던 것 같다. 

 

▲ 북에서 ‘조중친선다리’라고 부르는 압록강 철교의 모습.  © 국토매일

 

압록강에 갔을 땐 중국 땅과 조선 땅의 경계를 밟아보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신의주와 중국의 단둥이 연결되는 곳에 통칭 압록강 철교라고 불리는 교량이 있는데 각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는 것도 신기했다.

 

북에선 이 다리를 ‘조중친선다리’라 하고 중국에선 이 다리를 ‘중조우의교’라고 불렀다. 하지만 철교 옆의 다리가 하나 끊어지는 바람에 원래 이중 철로가 있던 쪽을 도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철도전문가 입장에서 조금 아쉬웠다.

 

조사 끝내고 와서는 다음 행동에 착수하기 위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북측의 판문역에서 열렸다.

 

2018년 12월 26일 오전 6시 48분. 서울(Seoul)→판문(Panmun)’ 승차권을 쥔 사람들이 “함께 여는 평화, 번영”이라 적힌 펼침막을 내건 9량짜리 특별열차 새마을호 4201호에 몸을 실었다.

 

▲ 서울역에서 판문역까지 운행할 열차가 서울역에서 출발 전 정차 중이다.  © 국토매일


이날 남측 참석자들은 당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경의선 남북 간 화물열차를 마지막으로 몰았던 기관사 신장철씨 등도 초청됐다.

 

남측 참석자 100여 명을 태운 이 열차는 8시 34분쯤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의 개성 판문역을 향해 갔다.

 

코레일은 이날 참석한 남측 주요 인사들에게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기념 특별 승차권을 배부해 주었는데 실제 승차권과 똑같은 모양에 서울과 판문역 간 출발지와 도착지가 인쇄되고 좌석번호와 가격까지 적혀 있어 받아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뭉클하게 해주었다.

 

실제로 이런 승차권이 발행될 날이 머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 남측 참석자 100여 명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 기념 승차권’을 받았다. 승차권 안쪽 면엔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를 위한 이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서울↔판문’이라는 이동 구간이 명시되어 있었으며 왕복 ‘운임’ 1만4천원이라는 글씨도 선명해 역사적인 이 순간이 머지않아 이뤄질 현실로 느껴져 더욱 꿈에 부풀었다.  © 국토매일

 

북측 인사로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대남 경제협력사업 담당의 방강수 민족경제협력위원회의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여기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구상과 관련이 깊은 중국·러시아·몽골 인사들과 아태 지역 개발과 관련된 국제기구 대표도 행사에 참석해 기대감을 더했다.

 

옌 허시앙 중국 국가철로국 차관보, 블라디미르 토카레프 러시아 교통부 차관, 아르미다 알리샤바나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UNESCAP) 사무총장 등이 그들이다.

 

김현미 장관은 김윤혁 북한 철도성 부상과 함께 침목 서명식과 남북 철로 궤도 체결식, 도로 표지판 제막식 등 기념행사를 가졌다.

 

침목이란 철도의 도상 위에 레일을 직접 지지하는 받침대 역할을 하는 나무를 말하는데 당시 판문역 침목은 시멘트로 되어 있어 시멘트 위에 남북이 각각 문구를 새겼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토카레프 러시아 교통부 차관은 “착공식이 앞으로 남북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추궈홍 주한 중국 대사 또한 “남북 발전을 지지하며 앞으로 저희 도움 필요하시면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사실 착공식이 성사되기까지도 대북제재로 인한 걸림돌이 많았다.

 

다행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착공식 전날 착공식에 필요한 물자 반출을 위해 대북제재를 면제해 주어 성사될 수 있었지만 착공식 이후 정밀조사와 설계과정 등 실제 공사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변수가 더 많을 것이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김정은과 트럼프의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이후 남북철도 사업 또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 현지공동조사 당시 사용했던 서울-신의주간 명패. 현재 황간역에 전시돼 있다.  © 국토매일

 

무엇보다 앞으로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과 대북제재 상황이 급선무였다. 그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철도실무자들이 완벽히 준비하고 서로의 의지가 굳더라도 진행은 불가능할 터였다. 

 

남북철도사업에 참여했던 코레일의 한 관계자는 이 일을 처음 맡았을 때 부담이 무척 컸다고 한다.

 

신변에 대한 가족들의 걱정뿐 아니라 남북철도사업을 추진하려면 기술적인 것부터 정치적 상황에 따른 변수에 따라 즉각적인 대응도 해야 했고 실제로 북측의 실무자들을 만나 대화할 때 그들을 설득하고 협조받을 수 있게끔 유도할 수 있는 대화 스킬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들의 눈빛 하나하나에 긴장을 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북측 사람들을 실제로 겪어보니 오히려 우리를 감시하려는 목적보다는 우리 신변을 확실히 보장해주려는 의도가 크다는 걸 알게됐다.

 

북한이 우리와 협력 사업을 잘 하다가도 당에서 지침이 내려오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곤 했던 점은 무척 안타까운 부분이다.

 

북은 김정은 국무위원의 말 한마디와 당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그간 쌓은 수고와 노력을 생각하면 남과 북이 함께 큰 일을 해나가기에 해결되어야 할 숙제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특히 아쉬웠던 점은 개성공단 폐쇄였다.

 

남북철도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 코레일 변현진님은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우리 기업들이 짐을 잔뜩 실은 채 남쪽으로 내려오던 모습을 티비로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간 숱하게 오가며 노력했던 성과들이 한 순간 허물어져버리는 느낌이었으리라.

 

당시 개성공단 인구가 약 20만 명 근로자가 5만 명 정도였는데 평양이나 외지 사람들도 그곳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 개성공단에서 일어난 일이 함경북도에 까지 전달되곤 했다.

 

통일학자들이 입을 모아 개성공단의 파급효과가 스펀지 효과보다 크다고 했을 만큼 개성공단은 남과 북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그곳을 통해 우리는 남북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할 수 있었고 화물열차를 정기운행할 당시에도 개성공단이 커다란 물꼬를 터 준 게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 트러스트형 구조의 대동강 철교의 모습. 부디 이 철길이 남과 북의 열차가 자유롭게 오가며 대륙까지 뻗어나갈 그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  © 국토매일

 

필자는 그동안 ‘남북철도 비밀노트’를 취재하면서 숱한 남북철도 관련 인사들을 만나보았다.

 

그 만남을 통해 우리 정부와 통일부, 국토부 그리고 최일선에 선 철도실무자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애정을 쏟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노력이 여전히 유효하며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남북철도의 희망은 남북이 함께 긴 세월 동안 순수한 열정으로 일궈낸 것이다.

 

참여했던 사람들은 머지않은 날 한반도의 남북평화번영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남북철도 사업에 또다시 훈풍이 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북측과 소통하기를 멈추어선 안 될 것이다.

 

강철로 서로 든든히 연결된 우리 남북철도가 언제라도 다시 드넓은 대륙으로 거침없이 달려나갈 그 날을 기대하며 이상으로 연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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