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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철도 비밀노트–14화] 끝나지 않은 대륙의 꿈-나진 하산 프로젝트

양정규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9/14 [09:30]

[북한철도 비밀노트–14화] 끝나지 않은 대륙의 꿈-나진 하산 프로젝트

양정규 객원기자 | 입력 : 2021/09/14 [09:30]

(기획특집 시리즈 남북철도 봄은 오는가) = 반세기 이상 단절되어 온 남북철도를 복원하기 위해 애써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측 인사들과 만나 실무협의를 하고 실제로 진행을 맡았던 실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비화를 모아 전해드립니다. 남측과 북측이 나눴던 팽팽한 긴장감과 때론 따뜻하고도 찡했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남북철도 복원의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요! =

 

[국토매일=양정규 객원기자/작가]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철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국경을 통과하기엔 국가와 주요 지역별로 철도의 폭인 궤간이 각각 달랐기 때문인데 국경 통과시 열차를 교체해야 하는 일이 생겨 시간과 비용의 소모가 컸다.

 

러시아권,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은 궤간 1,520mm의 광궤를 사용하는 반면 유럽이나 중국, 북한, 남한은 궤간 1,435mm의 표준궤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 낸 것이 ‘복합궤’이다. 복합궤란 표준궤에 맞춤한 열차와 광궤에 맞춤한 열차 모두가 다닐 수 있는 철길을 뜻한다.

 

우리측 실사 조사팀은 북측이 작업해 놓은 복합궤 위를 걸으며 일일이 눈으로 다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북측이 제법 깔끔하게 잘 처리해 놓은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 표준궤를 사용하는 남한과 북한의 기차가 광궤를 사용하는 러시아권 철길을 운행하기 위해서는 복합궤도를 설치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실사 조사 당시 북측이 복합궤 처리를 꽤 깔끔하게 처리해 놓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 국토매일

 

북측의 실행 능력과 속도는 참으로 놀라웠다. 2015년 11월경 북에 간 적이 있었는데 3천호 가량의 집들을 3개월만에 새로 지었다고 들었다.

 

당에 충성하는 군인들의  동원력이 대단한데다 조직력과 기술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러시아는 쇠를 만들 때 필요한 화석연료인 유연탄을 우리 남한에 수출하고 싶어 했다.

 

당시 남한은 매년 1억 3천만 톤 정도의 유연탄을 인도네시아, 호주 등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었다.

 

유연탄을 생산하던 러시아 쿠스바스 광산에서 하산까지의 거리는 약 6,000㎞나 됐지만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러시아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남과 북을 독려했다.

 

당시 남측 실사를 담당했던 실무책임자는 당시 남북관계가 불안정했고 UN과 EU가 북한에 가한 경제적 제재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신변안전보장과 환경문제, 극동 항만과의 경쟁 문제 등만 잘 해결된다면 얼마든지 사업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적극 참여했다고 한다.

 

충분히 사업성만 맞추면 운영할 수 있겠다 싶었다. 피튀기는 협상이 이어졌다.

 

화상으로도 열 번 이상 미팅하고 모스크바에 직접 방문해 협상하기도 했다. 과연 한국으로 물류가 갈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나진항에서 남한으로 시범운행을 세 차례나 하게 된다.

 

북측 사람들은 정말 친절했고 맡은 일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남측 실무책임자와 특히 많은 대화를 나눴던 북측 인사는 김창식 부국장으로, 감호역장을 하다가 철도성 과장으로도 일했던 터라 남북철도 관련해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북측 담당자들과 대화도 잘 통했고 제법 친한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와 협력하면서 기관차처럼 같이 질주해보자는 식의 말로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북돋우며 함께 가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 두만강역  © 국토매일

 

처음 북한에 도착했을 땐 북한 수비대의 경직된 모습과 세관원들의 투박한 말투에 잔뜩 겁을 먹기도 했다.

 

“소지품 검사할테니 빨리 협조하세요. 지금 협조 안 하면 남한 못 돌아갑니다.”

 

협박 아닌 협박조의 말을 들은 우리측 사람들은 허둥지둥 긴장하는 모습으로 가방 열기에 바빴었다.

 

당시 총무를 맡았던 우리측 실무자가 중국돈과 달러로 돈을 바꿔 가방에 넣어 다녔는데 돈가방을 본 세관원이 혹시 국정원인가? 라고 의심하는 바람에 엄청 무서웠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름 편하게 해주려는 농담 같은 것이었고 자주 방문해서 얼굴을 익히고 나선 서로 허물없는 사이로 대해주었다.

 

두만강에서 24인승 버스로 이동한 적이 있었는데 비포장도로여서 천장에 머리를 부딪힐 정도로 승차감이 안 좋았다.

 

선봉과 나진 사이는 포장도로여서 모두 그런 줄 알았는데 그 외의 지역들은 대부분 남측의 70년대 풍경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러 차례 방문하며 익숙해지다 보니 차에 타면 바로 졸음이 밀려올 만큼 편안해졌다.

 

기차에 올라 두만강 철길을 건널 때의 느낌 또한 잊을 수 없다.

 

김정구 선생님의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이라는 노랫말을 떠올리며 푸른 물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두만강은 약간 흐린 물이어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 두만강 철교에서 바라본 중국의 방천각  © 국토매일

 

하지만 두만강 철길 위에서 한 시야에 다 잡히는 러시아와 중국, 북한 땅을 보며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설렘과 대륙으로 힘찬 도약을 드디어 시작했다는 벅찬 감동이 밀려들었다.

 

같은 해 2014년 7월에는 동명산 삼호호텔에서 약 일주일간 숙박하며 낮 동안 철길 상황을 점검한 적이 있었다.

 

한여름이었지만 북쪽이라 날씨가 제법 선선할 줄 알았는데 무척 더웠다. 게다가 철길 안쪽을 도보로 이동하면서 조사를 해야 했는데 레일 온도가 너무 높아 바깥 온도가 34도면 레일 온도는 약 54도 정도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우리는 중간역쯤에 가 도시락을 펼쳤다. 남측에서 북측에 값을 지불하고 부탁한 도시락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고기반찬 도시락이 푸짐하게 보였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나 덥다 보니 퍽퍽한 고기가 잘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측 사람들 대부분이 반 이상을 남겼다.

 

그랬더니 북측 사람들이 화를 냈다.

 

“우리 인민들이 피땀 흘려 대접한 건데 왜 남깁네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몰라 당황했지만 한편으론 북측에선 나름 가장 좋은 음식이라며 대접하려고 했을텐데 너무나 미안했다.

 

그래서 먼저 고마움을 표시하고 날씨가 너무 더우니 고기보다는 야채 위주로 싸주면 어떻겠느냐는 말로 달랬다.

 

그랬더니 북측 사람들도 마음을 풀고 그다음부터는 오이나 고추, 쌈 종류로 도시락을 싸주어 그 후론 하나도 남김없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북한이 음식 대접은 정말 잘해준 것 같다. 그중 가지볶음 요리가 제일 맛이 있었다.

 

▲ 방문때마다 북측은 최고의 음식으로 정성껏 대접해주려고 노력을 참 많이 했다. 덕분에 진귀한 북한 음식을 자주 맛 볼 수 있었다.     ©국토매일

 

또한 북한에서 맛본 잊을 수 없는 맛으론 역 그늘에 앉아 마셨던 시원한 병맥주다.

 

북한의 맥주 중에선 대동강맥주가 더 유명하지만 탄산 맛이 일품인 용성맥주가 지금도 생각난다. 그늘에 앉아서 함께 나눠 마시던 병맥주의 시원한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이렇듯 남과 북은 서로의 다른 점을 하나 둘 맞춰 가며 남북이 함께 대륙으로 뻗어 나갈 꿈을 위해 뜻깊은 시간들을 이어나갔다.

 

2014년 11월 1차로 실사를 나갔을 땐 나진항에서 유연탄 4만 톤을 실어 날랐다.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울컥 눈물이 난다. 협상하다가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아 결렬될 뻔 했던 위기 상황들도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계획했던 일이 실제로 실행되는 것을 보니 머릿속으로만 상황을 그려가며 페이퍼로 작성된 문서로 협의할 때와는 또 다른 뿌듯함을 느꼈다.

 

컨베이어벨트를 통해서 중국 배에 유연탄이 실린 걸 보며 희망을 봤다.

 

남북한이 함께 사업을 할 수도 있구나, 내가 잘만 하면 남북한 사업에서 역사적인 사람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이런 역사적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설렜다.

 

▲ 3호 부두 전경. 계획했던 일이 실제로 실행되는 것을 보니 남북이 함께 경제적 도약을 이뤄낼 수 있겠구나 싶어 뿌듯했다.  © 국토매일

 

2차 실사는 2015년 4월에 이뤄졌는데 유연탄 13만 4천 톤을 배에 3번 나눠 띄웠다.

 

1차 때 성공적으로 해본 터라 2차 때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일요일은 북측도 남측도 하루 쉬었다.

 

쉬는 날 밖이라 하더라도 호텔 밖으론 나갈 수 없어 호텔에 있던 배구공을 가지고 우리끼리 족구를 했다. 족구는 남쪽에서만 즐기던 놀이여서 북쪽 사람들에겐 생소한 놀이였다.

 

배구공을 발로 차며 노는 것을 본 북측 사람들은 호텔 종업원들까지 합세해 함께 경기를 즐기며 신기해하고 재밌어 했다.

 

지용태님은 강호동, 안정환, 홍경민 등과 함께 우리동네 예체능이라는 TV프로그램에도 출연한 경험이 있는 족구의 귀재였다.

 

족구로는 확실히 우리가 우위였으나 북측 고위직 중 하나가 탁구로 포도주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포도주라 하길래 싼 줄 알았는데 나중에 내기에 져 포도주를 구입하려고 보니 값비싼 와인을 포도주라 지칭한 거였다.

 

가끔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 재밌기도 했는데 북측에선 오징어를 낙지라 하고 낙지를 오징어라 했다. 남과 북은 이렇듯 사석에서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좀 더 가까워졌다. 

 

2015년 11월, 마지막으로 진행됐던 3차 시범 운항 때가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 유연탄 12만톤 뿐 아니라 컨테이너 10개도 실어 날랐다.

 

컨테이너 물량도 검증해봐야겠다 싶어서였다.

 

운송 물품은 농심사의 ‘백산수’라는 생수였는데 백산수는 중국으로부터 컨테이너로 운송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중국과 북한의 세관을 통과하는 것부터 어려움에 부딪혔다.

 

그래도 결국 성공적으로 물류가 운송되자 가슴이 벅차올랐고 우리는 앞으로의 나산-하산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 수 있었다.

 

▲ 러시아의 하산역  © 국토매일

 

하산역에서 핸드폰을 제출한 뒤 열흘 만에 받아 들고 3차 시범을 하던 중 북측과 중국의 국경지역에 있을 때 중국의 와이파이가 잡혀 신기하기도 했다.

 

3차 시범 운항을 마친 우리는 나진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중국의 권하세관을 통해 훈춘에 하루 머문 다음 국내로 귀국했다.

 

러시아로서는 안정적인 부동항과 수출 루트를 확보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새로운 북한 사업에 참여하고 새로운 물류 루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었다.

 

▲ 나진항3호 부두에 세워진 기차. 이 프로젝트를 통해 러시아는 안정적인 부동항과 수출 루트 확보, 우리는 북측 사업에 참여하고 새로운 물류 루트 확보, 북측은 인민들의 일자리와 수입원이 생겨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했던 것 같다  © 국토매일

 

북측은 인민들의 일자리와 수입원이 생기니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배가 정박하면 정박료, 선박료, 세금 등 잘만 운용하면 돈을 벌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3차의 시범 운행을 성공리에 마친 우리는 사업성을 맞추기 위해 다각도로 협상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물류 주선업 쪽도 고려하고 있었다. 하산의 운용권을 가져오는 문제도 논의되었다.

 

러시아의 입장은 무척 긍정적이었다. 거의 계약이 임박할 시점까지 간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대북제재가 강화되어 더이상 진행이 어렵게 된다. 

 

한국은 대북독자 제재의 하나로 180일 이내 북한을 기항한 제3국 선박의 국내 입항을 금지시켰다.

 

남한의 지속적인 참여를 원한다던 러시아측 대표의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3년여간 이어 온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말았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희망차게 뻗어 나가던 대륙의 꿈은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지 못한 채 그렇게 꽁꽁 얼어붙고 있었다.

 

▲ 나진과 하산 사이에 위치한 비파각 호텔에서 바라본 비파섬. 순조롭게 진행되던 대륙의 꿈은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인한 대북제재 강화로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 국토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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