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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철도 비밀노트–9화] 남ㆍ북열차 하나로 합쳐지다-철도개보수 남북공동 현지조사1

양정규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7/06 [08:30]

[북한철도 비밀노트–9화] 남ㆍ북열차 하나로 합쳐지다-철도개보수 남북공동 현지조사1

양정규 객원기자 | 입력 : 2021/07/06 [08:30]

(기획특집 시리즈 남북철도 봄은 오는가) = 반세기 이상 단절되어 온 남북철도를 복원하기 위해 애써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측 인사들과 만나 실무협의를 하고 실제로 진행을 맡았던 실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비화를 모아 전해드립니다. 남측과 북측이 나눴던 팽팽한 긴장감과 때론 따뜻하고도 찡했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남북철도 복원의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요! =

 

[국토매일=양정규 객원기자/작가] 남북화물열차 정기운행을 시작으로 남북정상선언에서 합의된 경의선 철도 개보수사업도 본격 착수되었다.

 

드디어 개성에서 신의주까지 412km 구간의 철로 상황의 점검을 위해 2007년 12월 12일부터 18일까지 7일간의 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 2007년 12월 12일부터 7일간 일정으로 경의선 철도 개보수사업을 위한 남북 공동 현지조사가 시작됐다.  © 국토매일

 

경의선이 우선 점검 대상이 된 이유는 동해선보다 경의선의 여건이 훨씬 좋았다.

 

동해선은 제진에서 강릉까지의 궤도가 끊겨있었지만 경의선 쪽엔 궤도가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근처에 개성공단을 끼고 있어 여건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었다.

 

화물열차 시험운행을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기대감은 더욱 컸다.

 

철도 운행이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확장되려면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는 운영시스템도 필요했다.

 

역무원이 근무할 수 있는 역의 시설과 신호, 통신 등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점검 역시 염두에 뒀다. 

 

점검 첫날, 정부관계자,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시설안전기술공단, 철도건설공학회, 철도건축기술협회 등 관련분야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남측 조사단은 임시 특별차량에 몸을 실었다.

 

▲ 남측 조사단은 정부관계자,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등 철도관련분야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되었다.  © 국토매일

 

발전차, 침대차, 침식차 등 객차 3량으로 이루어진 특별열차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에 도착했다.

 

북에서 기다리던 북측 철도성 관계자 40여 명이 남측 조사단을 반겼다.

 

공동으로 뭉치게 된 남과 북의 조사단은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교량, 터널, 궤도 뿐 아니라 신호체계 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점검을 하기로 했다.

 

우리 남한의 철도는 사실 대륙으로까지 달려 본 적이 없었다.

 

분단된 사정 때문에 그동안 우리는 섬 아닌 섬나라로 살아왔던 것이다.

 

북한보다 항공화물 경험은 많을지언정 육로화물이나 국제열차 운영 등에선 경험이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우리가 기술적인 측면에선 북한을 도울 게 많았겠지만 육로화물과 국제철도 운영 부분 등 배울 점 또한 많을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남북 공동으로 꾸려진 조사단의 이번 조사가 상호 협력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리라 기대했다.

 

▲ 우리 남한의 철도는 그동안 대륙으로 달려본 경험 없이 섬 아닌 섬나라의 철도로만 존재해 왔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육로화물과 국제열차 운영에 경험이 많은 북한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  © 국토매일

 

북한은 철도부문에서 수송과 관련되어 당무사령원을 통해서만 지령이 하달되며 하위 단위의 일꾼들은 사령원의 지령을 정확히 집행하고 보고하는 규율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철도수송사업에 있어서도 군대와 같은 강한 규율과 질서를 세운 것이다. 

 

특히 철도개보수 남북공동 현지조사 기간 전후인 2007년과 2008년 신년사설을 보면 ‘철도부문에서 수송조직과 지휘를 짜고 들어 강한 규율과 질서를 세워 늘어나는 수송수요를 원만히 보장하여야 한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는 북한이 얼마나 철도운수 부문과 인민 경제 활성화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측 조사원보다 북측 조사원을 더 많이 배치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 역시 그들이 얼마만큼 철도를 중요시하고 개보수 열망이 컸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 남과 북이 각각 보유하고 있던 차량을 함께 편성하여 경의선 전 구간을 운행하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 국토매일

 

남측에서 몰고 간 객차 3량은 북측 기관차와 연결됐다.

 

남과 북의 관계자가 함께 열차에 승차하여 개성~신의주 전 구간을 조사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사실 여러 차례 남북열차 운행이 있었지만 남과 북이 각각 보유하고 있던 차량을 함께 편성하여 경의선 전 구간을 운행하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남과 북이 함께 할 미래에 대한 상징이었을 뿐 아니라 양측이 보유하고 있는 차량을 혼합하여 편성하여도 아무 문제 없이 운행이 된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 할 숙제도 내포한 것이었다.

 

철도개보수 남북공동 현지조사는 북한의 기관차에 남한 객차를 연결해 함께 타고 이동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북한의 철로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마치 말타는 기분이었어요. 목침목은 자재가 제대로 공급이 안됐는지 그냥 산에 있는 통나무를 베어다가 깐 듯 보였고 콘크리트도 군데군데 깨져있어서 울퉁불퉁 좌우상하 굉장히 흔들렸거든요. 그나마 선로가 괜찮은데 잘 갔는데 터널이나 교량, 곡선부분은 황영조 마라토너가 달리는 속도와 비슷한 속도라고 해야 하나. 선로 상황에 따라 많이 다르긴 했지만 남과 북의 철도가 하나로 합쳐져 자유로운 운행이 가능하려면 손봐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어요.”

 

▲ 북한의 철로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술력 그대로 멈춘 듯 했다.  © 국토매일

 

북한의 열차 속도는 30km/h 정도는 되었지만 남한으로 치면 비둘기호 열차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남한의 경우 비둘기호에서 무궁화, 새마을호에서 KTX까지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며 초고속 열차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 북한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술력 그대로 멈춘 듯이 보여 안타까웠을 것이다.

 

타고 내리느라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낙후한 시설이 걸림돌인 듯 보였다.

 

주로 북측이 안내해주는 곳과 우리 측에서 필요에 의해 점검이 필요한 곳을 요구하면 하차 후 공동으로 점검하는 방식이었다.

 

급곡선부나 교량, 터널, 정거장 등에 대해서는 함께 도보로 이동하면서 육안으로 확인하고 휴대용 측정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조사 장소는 주로 북측의 안내에 따라 정해졌는데 터널 5개소, 교량 8개소, 급곡선 4개소, 역 구내 등이 주된 조사 대상이었다.

 

이 외에도 토공, 교량, 터널 등 노반과 궤도, 건물, 신호, 통신, 전차선, 전력, 철도운영 등 각 분야별로 직접 현장을 확인 조사했다.

 

▲ 조사는 주로 북측이 안내해주는 곳과 우리측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점검하는 방식이었고 터널 5개소, 교량 8개소, 급곡선 4개소, 역 구내 등이 주된 조사 대상이었다.  © 국토매일

 

남한이라면 반나절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를 느린 속도로 운행하여 가다보니 점검 시간이 지체되곤 했다.

 

점검을 마치고 돌아올 때 신의주역에서 개성까지 약 9시간 45분이 걸렸다.

 

'리모델링이 아니라 이거 완전히 다시 새로 만들어야 할 수준인데?' 라는 생각이 스쳤는데, 북한이 원하는 것도 결국 리모델링 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 만들자는 것 같았다.

 

북한의 철도 사업은 김일성의 유훈 사업이다.

 

북한의 경제체제 또한 철도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서 철도는 곧 경제를 말한다.

 

북측 조사단 사람들은 남북철도가 운행되게 되면 수익이 증가해 경제적으로 북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 북한에게 있어 철도란 김일성의 유훈 사업으로서 철도의 발전은 곧 경제의 발전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 국토매일

 

1차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해에 다시 정밀 조사를 실시해 보수공사의 범위를 정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조사가 향후 남북철도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었다.

 

이후 남북경협을 위한 공동이용방안 또한 북측과 협의하기로 되어 있고, 특히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때 남북응원단이 열차를 이용하여 가기로 남북 정상간 합의가 되어 있었으니 남한으로서는 철도 문제가 결코 단순하지 않은 중대 사안이었다.

 

우리 조사단은 막중한 사명감을 갖고 조사에 임했다. 북한의 매서운 칼바람도 조사단의 열심을 방해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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