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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철도 비밀노트–5화]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쏠렸던 날 ①

문산에서 개성까지 경의선 시험운행 행사를 중심으로

양정규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5/11 [09:00]

[북한철도 비밀노트–5화]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쏠렸던 날 ①

문산에서 개성까지 경의선 시험운행 행사를 중심으로

양정규 객원기자 | 입력 : 2021/05/11 [09:00]

(기획특집 시리즈 남북철도 봄은 오는가) = 반세기 이상 단절되어 온 남북철도를 복원하기 위해 애써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측 인사들과 만나 실무협의를 하고 실제로 진행을 맡았던 실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비화를 모아 전해드립니다. 남측과 북측이 나눴던 팽팽한 긴장감과 때론 따뜻하고도 찡했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남북철도 복원의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요! =

 

[국토매일=양정규 객원기자/작가] 2007년 5월 17일의 하늘은, 비가 내릴 것이라던 기상 예보와는 달리 쾌청했다.

 

비록 시험운행이긴 했지만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열차가 남북을 오가는 것은 1951년 6월 12일 이후 56년 만의 일이었다.

 

▲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을 축하하는 한반도기 애드벌룬과 축하 현수막. 2007년 5월 17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의 하늘은 비가 내릴 것이라던 기상 예보와는 달리 쾌청했다.  © 국토매일


경의선의 출발역인 문산역사엔 반세기만에 연결되는 남과 북의 철도 시험운행 행사를 전 세계로 타전하기 위해 모여든 기자들이 일찍부터 서둘러 자리해 있었다. 

 

▲ 이날 오전 10시30분께 북측 관계자들이 문산역에 도착하자 수많은 취재기자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 국토매일

 

주차장 안으로 남측과 북측의 인사들을 태운 버스가 하나 둘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식전 행사와 공식 행사 등을 위한 무대 앞 빈자리도 하나 둘 채워졌다. 

 

▲ 남측 탑승자 선정시, 통일부는 나름대로 엄격한 인선 기준을 적용했다고 한다. 6.15남북공동선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했던 수행원들과 남북관계 유공자, 연예인 등을 포함해 각계 각층 인사를 망라했다. 경의선의 마지막 기관사로 유명한 한준기씨도 팔순의 나이에 경의선 열차에 다시 오르는 소원을 이루게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200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본인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명단에서 빠지면서 석연치 않은 부분도 노출됐다.     © 국토매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북측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가 행사장 안으로 입장하자 북측 관계자들도 줄을 이어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북측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문산역에 도착해 남측 인사들과 환담을 가진 후 식전 행사와 공식행사, 기념촬영 등을 했다.

 

▲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북측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 국토매일

 

▲ 이날 행사에는 남측의 이재정 장관과 이춘희 건설교통부 차관 그리고 통일부, 국토부, 정부 관계자들과 철도 핵심인사 등 100명, 북측은 권호웅 내각참사를 비롯한 김철 철도성 부상, 박경철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 리순근 철도성 부국장 등 50명 등이 참여했다.  © 국토매일

 

현장에는 돌발 상황 등에 대비해 차량 이동 구간을 사전에 수색하고 견인차 5대도 현장에 배치, 차량 등을 이용해 미리 철로를 점검하는가 하면 경찰관 1241명도 배치했다.

 

행사 전 약간의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납북자 가족들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저 열차를 타야 된다며 노파가 바닥에 드러누워 울부짖기도 했다. 분단 조국의 아픈 현실이었다.

 

▲ 당시 7435호 기관차를 몰고 개성까지 가는 임무를 맡았던 신상철 기관사. 신장철 기관사의 부친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으로 한국전쟁 때 피란 내려온 이산가족이어서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 국토매일

 

▲ 함께 기관차에 오른 김재균 기관사는 열차 운행 경력이 풍부한 베테랑이며 기관사를 지도 교육하는 팀장으로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 국토매일

 

한편, 7435호 디젤기관차를 몰고 개성까지 가야 했던 기관사들은 다른 날보다 이른 새벽 5시 집을 나섰다고 한다. 신장철 기관사의 부친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으로 한국전쟁 때 피란 내려온 이산가족이어서 이번 운행이 더욱 뜻깊었다.

 

동승했던 김재균 기관사는 열차 운행 경력이 풍부한 베테랑이며 기관사를 지도 교육하는 위치에 있었던 팀장으로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했다.

 

행사 약 두 달 전부터 철저히 준비해왔지만 반세기만에 처음 치러지는 행사인 만큼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철저한 사전 점검과 자료 준비가 필요했다. 

 

실제로 북에 가진 않았지만 여러 숨은 일꾼들도 있었다. 시설과 토목, 역무, 전기, 차량 등, 개성으로 향해 갈 임무를 가진 시험운행열차의 안전과 최고의 기량을 위해 한달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계속 준비했다.

 

기관사들이 사무실에 도착하자 미리 도착해있던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늦게 온 기자들이 먼저 그를 인터뷰하려고 서로 밀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인터뷰 시간을 5분 이내로 간단히 마치고 출무준비를 서둘렀다.  

 

▲ 문산역부터 개성역까지의 경의선 시험운행 열차의 운행 요원으로 선발된 기관사 등이 출무신고를 하고 있다.  © 국토매일

 

디젤기관차 1량과 새마을객차 4량, 발전차 1량으로 구성된 남북철도연결 열차시험운행열차가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기관차에는 기관사 2명, 여객전무 1명, 안내승무원 1명, 차량 검수원 1명 등 총 5명이 기관차 운행 요원으로 함께 올랐다.

 

▲ 기관차에 오른 김재균 기관사는 개성까지의 안전운행을 다짐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 국토매일

 

북측 기관원 1명, 북측철도관계자 1명도 함께 탑승했다.

 

문산역에서 임진강역, 도라산역까지는 몇 차례 자체적인 시험운행을 했던 터라 자신이 있었지만 북측 구간, 즉 MLD를 거쳐 판문역과 손하역을 지나 개성역까지의 구간은 한 번도 달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북측 기관사가 함께 탑승하여 가야 할 방향이나 주의사항 등을 알려주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객차에는 남측의 이재정 장관과 이춘희 건설교통부 차관 그리고 통일부, 국토부, 정부 관계자들과 철도 핵심인사 등 100명, 북측은 권호웅 내각참사를 비롯한 김철 철도성 부상, 박경철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 리순근 철도성 부국장 등 50명이 몸을 실었다.

 

▲ 권호웅 내각참사, 김철 철도성 부상 등 북측인사들이 객차에 오르자 취재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   © 국토매일

 

세계에서 분단된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행사가 진행된다는 건 더 뜻깊은 사건이었다.

 

곧바로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만큼 모쪼록 이 행사를 아무 일 없이 최선의 운전기량을 발휘해서 안전하고 정확하게 해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 KBS 김병찬 아나운서가 ‘출발’을 외치자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 국토매일

 

“문산역에서 시운전열차 출발...!!”

 

KBS 김병찬 아나운서의 힘찬 외침에 따라, 선로 옆에 서 있던 문산역장이 녹색기를 흔들며 출발 신호를 줬다.

 

기관사는 백미러로 녹색기가 흔들리는 것을 확인 한 뒤 기적을 2초간 울렸고 그 순간 출발을 감지한 행사장 안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짜릿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기관차의 가간감을 당기자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찬 기적 소리와 함께 열차가 북한을 향해 출발하고 있습니다. 기관사님한테 손 한번 흔들어 주세요~”

 

▲ 행사장 뿐 아니라 열차가 가는 길목에선 이날의 뜻깊은 행사를 축하하고 감격스러워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 국토매일

 

차창 밖은 수천의 환영인파로 가득했다. 행사장 뿐 아니라 문산역 주변 건물의 옥상과 창가에 가득한 사람들의 눈빛에서 기대와 설렘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다.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드는 인파를 뒤로 하고 민간인출입통제선을 지나 남방한계선을 넘었다.

 

▲ 5월의 차창 밖 풍경처럼 객차에 타고 있던 남과 북의 승객들의 마음은 따사로운 봄날 같았을 것이다.  © 국토매일

 

차창 밖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은 모내기 준비가 한창인 모습이었다. 가을의 풍요로운 추수를 꿈꾸며 물을 대는 농부들의 마음처럼 쾌청한 봄날 첫 출발을 하고 있는 경의선 열차 또한 벅찬 기대와 설렘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멀리 언덕 위에서는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두 손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웃옷을 벗어 돌리며 반겨주는 사람들도 보였다. 

 

▲ 임진각 곳곳에 빼곡하게 운집한 환영 인파들  © 국토매일

 

임진강역을 지날 때는 실향민으로 보이는 분들이 판문각 부근에 운집해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의 환호성은 다른 환영인파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왠지 더 구슬프고도 감격스럽게 느껴졌다.

 

옆에 타고 있던 북한 기관원이 대뜸 물었다.

 

“남측 사람들 지금 티비 중계합니까? 완전 축제 아닙니까?”

 

그러면서 조그마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거 미국놈들도 볼까?”

 

북측 기관원들은 우리의 축제 분위기에 사뭇 놀라는 눈치였다. 

 

문산역에서 임진강역을 지나 도라산역에 도착해 객차 내에서 세관 및 통행 검사를 받았다. 이때 시간이 좀 지체되는 바람에 1시까지 개성역에 도착해야 하는 스케쥴이 조금 빠듯해졌다.

 

마음이 조급해진 탓에 초반에는 속도를 조금 높여야 했다. 1단을 놓는 순간 속도가 8까지 올라갔다.

 

▲ 드디어 굳게 닫혀있던 통문이 열리고 오랜 시간 준비해왔던 남북철도연결 구간에 대한 시험운행이 진행됐다.  © 국토매일

 

최고 속도는 60km/h였지만 비무장지대에서는 열차를 세우면 안되기 때문에 여러 위험요인 등을 감안해서 20~30km/h로 달리고 이후 평균 40km/h로 달리기로 약속해놓은 터였다. 

 

또한 북한과 우리가 통신을 하기 위해 취약했던 점은 무전기 주파수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도라산역 출발할 때 직접 대화해야 하는데 북쪽 사투리가 강해서 잘 못알아 듣기도 했고 주파수가 달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도라산역하고 다이렉트로 연결이 돼서 통신할 수 있었다.

 

조급하고 긴장됐던 마음도 잠시, 분계선 넘을 때는 잘렸던 허리가 다시 이어지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다고 한다. 반세기만에 열차가 처음 운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 분계선을 넘을 때 운행 요원들과 객차의 승객들은 저마다 잘렸던 허리가 다시 이어지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 국토매일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그 주변은 너무도 적막했고 오직 이름을 알 수 없는 짐승 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수시로 철길 위에서 노닐었을 고라니가 기차를 보자 흠칫 놀라 달아나기도 했다. 새들이 수시로 날아다녔지만 열차 운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6·25 전까지 존재했던 ‘장단역’이라는 역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낡고 허물어진 승강장과 녹슨 레일의 흔적을 보니 마음이 더 아련해졌다.

 

‘남북철도 연결지점’이라는 팻말을 지나치자마자 딱 북한 지역이 나타났다. 

 

남한에서는 거리를 기준으로, 기찻길 옆에 2킬로미터 지점마다 하나씩 말뚝을 박아놓는데 반면 북한은 모든 게 평양 중심이었다. ‘평양기점 남쪽 202킬로미터 지점’이라고 쓰인 말뚝을 보니, 아 이제 드디어 여기가 북한 땅이구나, 라는 게 느껴졌다. 

 

레일과 침목은 남측에서 미리 자재를 제공하여 공사한 것이어서 현대식으로 보였지만 자갈은 북한 자체적으로 깔았던 터라 딱 보기에도 썩 좋지 않았다. 제대로 가공한 것이 아닌 크기가 제각각인 잔돌 같아서 안전에 지장이 생길까 조금 불안했다. 

 

북측의 철도관계자는 감정의 동요 없이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했다.

 

“곧 교량이 나옵니다, 이제 오르받이입니다. 저 선로가 내리받이입니다.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오른쪽으로 돌아갑니다.”

 

북방한계선 지나서 가니 북측에서도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쳐주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북한도 남한처럼 환영인파들이 기대가 가득 차 있구나, 싶은 마음에 화답하는 마음으로 기적도 울리고 조명도 깜빡깜빡하며 좋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남측사람들이었다.

 

선로전환기마다 군인처럼 보이는 철도 직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개성까지 도착시간이 임박해서 눈이 빠지게 기다릴까봐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다보니 속도를 높여 판문 지나 개성갈 때 진동도 사실 조금 있었다.

 

손하역 접근할 때 저 멀리 약 100미터 전방에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여 선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래가 쌓여 있는 것을 작업자들이 일일이 손으로 덮고 있었다.

 

위험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아슬아슬 안전하게 지나갔다. 

 

드디어 개성역 홈으로 열차가 진입한 순간이었다. 옆 레일을 보니 개성에서 신의주 까지 운행하는 보통 완행열차가 정차해 있었다.

 

김재균 기관사는 반가운 마음에 완행열차에 타고 있던 북한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반갑다며 손을 흔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들은 끝내 시험운행 열차 쪽으론 시선을 주지 않았다. 투명 기차 보듯 시선을 전혀 딴 데 두었다.

 

▲ 개성역에 들어서자 북한의 학생들이 목에 붉은 띠를 두르고 일렬로 서서 손뼉을 치며 ‘조. 국. 통. 일’을 외치며 환영해주었다.   © 국토매일

 

단지 홈에 나와 있는 고등학생 쯤 되어보이는 학생들이 붉은 띠를 목에 두르고 일제히 일렬로 서서 손뼉을 치며 ‘조. 국. 통. 일’을 외치며 환영했다. 자유롭고 열렬하게 환호성을 지르던 남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 남측 승객들과 북측 승객들은 개성역에 내린 뒤 자남산 여관에 마련된 점심식사를 하면서 북측 고위 인사들의 축배를 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친 후 선죽교 등의 관광을 했다.  © 국토매일


승객들이 모두 점심 식사와 선죽교 등의 관광을 위해 자남산 여관으로 향한 사이, 우리측 기관사를 비롯한 남측 승무원들과 개성역장, 검수승무원, 개성역 직원들이 함께 우리 열차 안에서 조촐하게 식사를 했다. 우리를 위해 특별히 개성 최고의 호텔인 자남산 여관에서 공수해 온 도시락이라고 했다.

 

“반세기만에 왔으니 동지여, 많이 드시라우.”

 

풍채 좋은 개성역장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음식을 권했다. 식사 후에는 김일성 초상화가 인상적인 개성역을 둘러봤다.

 

▲ 현대식 기차역으로 리모델링된 개성역의 모습. 중앙에 자리한 김일성 초상화가 인상적이다.  © 국토매일

 

▲ 북한의 역무원과 남한의 경의선 마지막 기관사 한준기씨가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국토매일

 

▲ 북한의 권호웅 내각참사와 남한의 이철 전 코레일 사장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국토매일

 

▲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김원웅씨와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이재정씨가 북측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국토매일

 

승객들은 자남산 여관에서 오찬을 즐긴 후 선죽교 관람 등을 마치고 곧바로 개성을 떠나야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무르는 동안 함께 했던 북한의 승객, 운행 요원, 역무원 등과 정이 든 것 같았다.

 

모습과 말이 같은 한 핏줄인 한 민족이 아픈 역사로 인해 이렇게 아픈 이별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발차를 위해 개성역 역 내에 서 있는 신장철기관사와 김재균기관사.  © 국토매일

 

▲ 개성역에서 열차 출발을 알리는 수신호 중인 북측 사람들.  © 국토매일

 

기관사들은 개성역 안에서 두 어 시간 머물며 담소를 나누다가 오후 3시경 개성역에서 다시 남한 승객들을 태우고 기관차를 돌려 남쪽으로 내려왔다.

 

남북열차 시험운행을 준비하고 다시 달리고, 멈춰서는 과정을 직접 겪으며 운행이 재개될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특히나 군사보장조치가 이번 시험운행에만 한정된 조치였던 만큼 언제 다시 남죽의 기차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올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출발지였던 문산역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반세기만에 성사된 행사가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마무리되자 그제서야 진한 피로가 몰려왔다.

 

▲ 출발지였던 문산역에 열차가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 국토매일

 

거리상 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그곳을 이렇게 오랜 시간과 복잡한 절차를 거쳐 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날 행사에 참여했던 몇몇 인사들은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말한다. 그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던 북녘 땅이 그립고 특히 매년 5월이 되면 더욱 그렇다고.  

 

비로소 녹슬었던 남과 북의 철로엔 다시 새 살이 돋고 새 피가 흐르기 시작한 것 같았던 그날처럼 앞으로도 언제든지 남북으로 이어진 열차가 허물어진 경계를 지우고 개성을 지나 신의주까지 달리는 그날을 모두가 꿈꾸었다.

 

▲ 경의선 시험운행 열차인 7435호가 모든 임무를 마치고 출발지였던 문산역에 도착해 정차해 있다.  © 국토매일

 

시험운행 행사를 성공리에 끝마치고 나자 남북열차 시험운행에 참여했던 관계자들 뿐 아니라 이날 행사를 지켜봤던 한반도의 사람들은 이 행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운행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하는 분위기였다. 

 

남북열차 정기 운행에 대한 미래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시작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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