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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국토 도시공간 기본이 중요하다

권영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권영상 서울대학교 교수 | 기사입력 2021/03/09 [11:57]

[기고]국토 도시공간 기본이 중요하다

권영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권영상 서울대학교 교수 | 입력 : 2021/03/09 [11:57]

▲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도시계획ㆍ도시설계 전공 권영상 교수.  © 국토매일

[국토매일=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도시계획ㆍ도시설계 전공 권영상 교수] 전국이 부동산 문제, 가덕도신공항 문제, 3기 신도시 문제 등으로 떠들썩하다.

 

전 국민과 전언론이 이처럼 국토와 도시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요즘 상황을 보면서 당황스러운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국토, 도시분야 전문가들은 상상력이 가득한 스마트시티나 미래도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쏟아놓기 바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보면 정작 우리는 우리의 국토공간에 대해 얼마나 장기적인 안목 없이 정책을 추진해왔는가에 대해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다.

 

대규모 국책사업이 진행된다는 것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국민들의 삶의 구조를 바꿔 놓는 사업이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와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대규모 사업들이 급하게 진행된다면 기본에 충실한 준비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기본에 대한 망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우리 국토, 도시공간의 안전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는 최근 대규모 재난재해를 여러 번 겪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아까운 인명을 잃었고, 2016년 경주 지진으로 우리 국토가 절대 지진에서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이어 2016년에는 서울메트로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직원이 안타깝게 사망했고, 2019년에는 어린이 교통사고로 민식이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지난해만 해도 대규모 폭우로 많은 도시가 물에 잠기는 상황이 반복됐고, 부산 초량지하차도에서는 폭우에 시민들이 숨진 참사가 발생했다. 어린이집을 통해 상습적인 어린이 학대와 관리소홀이 지적되고 있는 최근까지 도대체 우리의 국토와 도시공간에서 안전한 곳은 어디인가?

 

하지만 이러한 안전에 대한 여러 우려에 대해 우리 사회의 대응은 놀랍게도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망각이다. 지진이나 태풍으로 대규모 도시공간의 손실이 있어도 그때 잠깐 대책수립에 시끄럽다가도 그 유효기간이 3개월이 가지 않는다. 2016년 경주 지진이 발생했을 때, 모든 언론에서 지진에 대해 호들갑을 떨고 정부는 거기에 맞춰서 장단을 맞추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전문가 이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얼마 전 작고하신 지진 분야 전문가 교수님이 계셨다. 교수님께서는 2016년 당시 정부가 구성한 지진대책 추진단장을 맡으셔서 헌신을 다해 지진종합대책을 위한 장기구상을 만드셨지만 그 이후 어떠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없다.

 

지난해 큰 홍수가 났어도 가을이 되고 나면 홍수는 잊혀지고 무덤덤해진다. 우리의 국토, 도시공간은 이러한 놀라운 망각의 일관성 속에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놓치고 있다.

 

국토공간 곳곳이 시한폭탄이고, 땜질식 처방만이 난무한다.

 

전문가의 식견은 공무원들의 캐비닛에 고이 간직되고 언론에서 관심을 두는 다음 이슈로 넘어가기 바쁘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지속가능한 국토며 도시의 장기적인 구상이 가능하겠는가?

 

20년을 기준으로 수립하는 국토종합계획이나 도시기본계획도 수시로 수정하는 바람에 기본계획 무용론까지 등장하는 작금의 세태이다. 어느덧 전문가들은 5년 단위로 재수정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계획수립에 1년이 넘게 소요되는데, 4년을 위한 계획이라는 것이 계획인가?  계획수립이 끝나자마자 다음 계획 수립을 위한 예산확보를 시작하는 자조 섞인 소리도 들린다.

 

우리의 국토, 도시공간은 6.25 전쟁 이후 60~70년대 급격한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급하게 조성됐다. 그 덕분에 급격한 경제성장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 수명이 오래가지 못한다. 

 

마치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급격하게 체력을 끌어올리는 약물을 복용한 운동선수일까?

 

한국의 도시를 유럽의 여러 도시들과 비교하면서 왜 우리의 도시는 유럽 도시들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건축물이나 도시구조를 가지지 못할까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이유는 도시를 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몇십 년을 들여 조성하는 외국의 도시들과 달리 불과 10년도 안 돼서 개발하는 한국의 도시들에서 그 견고함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급격한 경제성장기에 만들어진 단독주택들과 저급한 기술을 가지고 6개월 만에 찍어내는 다가구, 다세대 주택들, 차가 이동하기 어려운 구불구불한 도로들과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예측하기도 힘든 상하수도망들, 기초가 충실하지 못한 구조물들과 건축물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국토 도시공간이다.

 

이러한 곳에서 오래된 역사도시의 풍경과 정취만 추억하기에는 안전이라는 타협하기 어려운 마지노선이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의 망각의 힘에 기대어 우리는 또다시 우리의 도시공간이 안고 있는 시한폭탄 옆에서 우리의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갑작스럽게 국토와 도시와 관련된 이슈들이 정국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약 15년 전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시기 이후로는 국토와 도시 관련 담론이 정국을 선도하는 이슈가 되지 못하다 이후는 주로 복지 이슈가 정국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이전 정부가 대규모 해상사고로 인해서 큰 곤욕을 겪었음에도 현 정부가 국토공간의 안전에 대한 화두에 놀랄 만큼이나 무심한 것은 길게 생각해 보면 매우 흥미롭다.

 

최근 등장한 여러 정책들에서 이러한 안전에 대한 고려가 치밀하게 검토되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초고밀도의 개발이나, 대규모 매립을 전제로 한 개발사업, 분명 속도전으로 압박받을 것이 분명한 신도시 사업들을 보면서 기본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정책이 추진되기를 기대해본다.

 

당연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했다. 막내 돼지의 지혜를 기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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