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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간이종심제 입찰기준 놓고 전기공사협회-전차선시공업계 “샅바 싸움”

장병극 기자 | 기사입력 2020/05/26 [09:21]

[심층] 간이종심제 입찰기준 놓고 전기공사협회-전차선시공업계 “샅바 싸움”

장병극 기자 | 입력 : 2020/05/26 [09:21]

업계  “시공 경험 없더라도 100억 미만 공사 충분히 진입”

협회  “회원사 진입위한 관급 공사 문턱 낮추는데 초점 둬야”

 

[국토매일-장병극 기자] 전기공사협회가 간이종심제 입찰 기준에 있어 특정실적을 업종실적으로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전기철도 업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금년부터 100억 이상 공사에 본격 적용하고 있는 간이종심제는 기존 적격심사에 비해 기술자 평가기준마저 대폭 완화시켰다. 전기철도 업계에서는 '특정실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전기철도 시공에 있어 안전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와도 같다고 입을 모은다.

 

전차선 분야에 오랜 시공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업체들 입장에서는 전기공사협회가 추진 중인 시공실적 완화 움직임에 대해 한마디로 무책임한 판단이라고 지적한다. 소위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하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전기철도 업계들이 각자 유지·운영하기 위한 현실과 시장 상황 등을 무시한 채 마치 '독점'인 것 마냥 호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철도사업에서 전차선·신호분야는 한전에서 발주하는 배전공사 등에 비해 사업전체의 규모가 크지 않고 일정하게 발주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수십년 동안 전기철도사업을 지탱하기 위한 투자와 생존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같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 수주실적 없더라도 전기철도 위해 어렵게 기술 유지·전승...회사 유지 쉽지 않아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발주한 입찰자료를 분석하면 2015년부터 5년 간 설계금액 기준 100억 이상 규모의 전차선 공사는 36건 정도 발주가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2015년 5건, 2016년 9건, 2017년 6건, 2018년 4건, 2019년 12건이었다. 2018년부터 2년 간 해당 공사의 입찰에 참여한 업체 수도 최소 45개사 이상(PQ방식 4건 제외)이다. 

 

시장 규모도 크지 않은데 경쟁 구도는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2010년에는 평균 20여개사가 입찰에 참여했지만 2019년에는 약 2.5배 이상 증가했다. A사 관계자는 "간이종심제 적용 전인 적격심사 시행 당시 업종실적으로 기준을 완화한 탓에 전차선 분야에서도 현장 경험이 부족한 업체가 참여할 수 있었다"며 "그 결과는 강릉선·오송 사고 등으로 이미 증명된 셈이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부터 5년 간 동일실적으로 평가기준을 적용했을 당시 30여 개 내외의 업체가 입찰에 참여해 공사를 진행했던 사례와 2015년부터 5년 간 업종실적으로 완화한 후 기술자평가기준을 높여 시공한 경우를 비교했을 때 과연 공사의 품질이 나아졌는지 냉정하게 판단해봐야 할 시점"이라며 "입찰만 따내자는 식으로 편법을 동원하고 기술자평가기준 충족을 위해서 자격증 대여로 서슴치 않았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되새겨볼 일"이라고 꼬집었다.   

 

▲ 전기철도 업계에서는 '특정실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전기철도 시공에 있어 안전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와도 같다고 말한다.  © 국토매일

 

사업을 수주한 업체별 실제 노무비성 예산을 따져보면 현실은 암담하다. 최근 5년 간 전차선 공사는 투찰액 기준으로 누적 5000억 수준이다. 여기에서 자재비·부가세·제세공과금 등을 제외하고 실제로 시공사에 유의미한 노무비·일반관리비·이윤을 합하면 총 공사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간이종심제 시행 전 추정가격 100억 이상 공사에 참여한 업체 수 45개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1개 업체 당 배정되는 노무비성 예산은 연간 10억에도 미치지 못한다.

 

◆ 기술자 유지 위해 연간 최소 5억 이상 추가 지출...40년 역사 철도전차선 시공기술 고사 직면

 

노무비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기술자 유지 비용이다. 전기철도 업계에서도 이들 핵심 기술자들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2018년 엔지니어링협회 정책연구실에서 발표한 임금실태조사결과 공표자료에 따르면 전기분야 기술자 노임단가는 특급 27만 8천원, 고급 24만원, 중급 20만원, 초급 19만원 선이다. 월 평균 22일을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급여는 특급 7360만원, 초급 5088만원에 달한다.

 

기존 100억 이상 적격심사 기준에 따르면 만점을 받기 위해 대표사 기준 경력기술자 5명, 일반기술자 10명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현행 간이종심제의 경우 기술자 1명만 보유하면 입찰 자격에 문제가 없다. 그동안 수주 실적이 없더라도 전차선 등 특정 공사에 전문화된 전기철도업계 입장에서는 기술자 유지를 위해 연간 최소 5억 이상을 추가 지출해온 셈이다. 

 

한국 전기철도의 역사와 함께 해온 전차선 시공업체들은 그들이 가진 현장 경험과 노하우가 고사될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기술 유지를 위한 추가 지출을 감내했다. 그런데 간이종심제로 인해 기술자 보유 기준마저 완화되자 이번에는 철도에 발 들여본 적이 없는 '전기업체'들이 특정실적에서 업종실적으로 입찰 기준을 더욱 풀어 달라고 주장하며, 100억 이상의 사업부터 단숨에 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면초가인 상태이다. 공단 관계자도 "최소한의 시공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성을 가진 업체를 선정·육성하는 차원에서 동일 공사실적 기준을 적용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B사 관계자는 "길게는 40년 이상 전차선 등 분야에서의 시공 경험과 노하우를 이대로 사장시킬 수 없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수주가 없는 시기에도 어렵게 회사와 기술인력을 유지해왔으나, 이제 기업이 자체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기술자를 육성·보유하고 기술의 유지·전승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어려워진 상태"라고 토로했다.

 

▲ 한국 전기철도 역사와 함께 해온 전기철도 업계의 시공 경험이 사장될 위기에 몰렸다. 업계에서는 자체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기술자를 육성·보유하고 기술의 유지·전승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어려워진 상태라고 토로한다.  © 국토매일

 

◆ 전기철도 시공=일반 전기공사? 위험한 발상 

 

전기공사협회에서는 간이종심제 입찰 구조에서 특정실적으로 제한할 경우 사실상 특정업체들이 독식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수 있다며 전기공사업을 하는 업체들도 철도분야로 업역을 확장할 수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기철도업계에서는 전기철도 공사도 일반 전기공사와 비슷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나머지 30~40년 간 어렵게 현장을 누비며 축적한 시공 경험과 노하우를 무시한 처사라고 반박한다. 지난 3년 간 신호·전기분야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 역시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시공 능력 부실이 주된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C사 관계자는 "전기공사협회 등 전기공사업 면허를 가진 업체들 사이에서 전차선를 비롯한 전기철도 관련 공사가 일반 전기공사랑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보고 개탄했다"며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전문성'이라는 단어와 '독점'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공사협회가 유독 철도공단 사업 중 전기철도 관련 발주 기준을 낮추려 들고 있다"며 "정작 전기업계에서 가장 큰 관급 발주처인 한전 및 계열사뿐만 아니라 한국철도공사, 서울교통공사 등은 현재 간이종심제를 적용하는 철도공단보다도 전기분야 입찰기준이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D사 관계자는 "전기공사협회측에서 타 발주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로 LH, 도로공사 등을 들고 있는데 사실 전기분야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한전측의 발주기준을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며 "한전뿐만 아니라 한국철도공사나 서울교통공사 등에서 전기·전차선 분야 관련 공사 입찰 공고를 낼 때도 실적 기준을 훨씬 까다롭게 선정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전기철도 시장의 진입이 가로막혀 있는 것도 아니다. E사 관계자는 "최근 추세로 볼 때 지상의 전력선 공사 등은 철도분야 시공 실적이 없는 전기공사업체들이 대부분 수주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지역의무 공동 도급제도와 공구분할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실적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업체라도 전기 철도분야에서 100억 미만 공사부터 차근차근 시공실적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말했다. 

 

▲ 전기철도 시장 진입이 가로막힌 것은 아니다. 100억 미만 공사부터 차근차근 실적과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최근 분당선·과천선 등 공사 난이도가 높은 개량선 발주가 증가하면서 이에 적합한 발주방식도 존중될 필요가 있다.      © 국토매일

 

◆ 개량선 발주 증가 추세, 공사 난이도 적합한 발주방식 존중돼야

 

전기철도협회측에서도 시공에 있어 안전성과 전문성을 확보를 위해서는 공사 구간의 특성에 맞춘 공단의 발주 방식이 존중되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오랜 기간 한국의 전기철도 역사와 함께 해온 업체들의 경우 나름대로의 시공 노하우들을 보유하고 있고, 전차선 시공을 위해 발주처에서 요청하지 않더라도 각 업체별로 자체 투자해 시공 장비 등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전차선 등 전기철도 시공에 있어서 100억 이상 사업은 결코 작은 공사가 아니다"며 "최근 분당선 개량공사를 발주했고  곧 과천선 개량 공사도 발주가 시작되는데 특히, 운행선 개량의 경우 공사의 난이도가 높아 철도분야에 있어 전반적인 지식과 시공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공사 품질은 물론이거니와 안전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전기공사협회 관계자는 "협회는 기본적으로 보다 많은 업체들에게 입찰 기회를 주기 위한 차원에서 철도공단뿐만 아니라 각종 관급공사의 문턱을 낮추는데 초점을 두고 있고 철도공단의 발주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협회 차원에서 철도공단의 발주 계획과 입찰 참여업체·낙찰결과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전기철도 업계의 목소리를 담고자 6월 중 산-학-연이 참여하는 전기철도분과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원본 기사 보기:철도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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